쭈꾸미는 바닷가 연안에서

원투낚시로 잡기도 하지만


제대로 재미를 즐기고

풍성한 수확을 거두려면

배낚시를 하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다른 낚시에 비해서

준비도 간단하고 쉬워서

초보자들도 쉽게 할 수 있어

바다낚시를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

더 없이 좋은 낚시이죠.


주꾸비 낚시의 채비를

간략히 알아보면,


낚시대는 길이 2.4m 전후의 

연질 외줄 낚시대나 빼내기식

다용도 릴낚시대이면 됩니다.


낚시에 관심이 많고

지속적으로 하시는 분들이라면

민물용 베스 낚시대나

라이트 지깅 대를 사용하기도 하구요.


릴은 소형 스피닝 링이나

베이트캐스팅 릴이 적합하다고 합니다.

베스용 낚시대나 라이트 지깅 대라면

베이트캐스팅 릴이 좋구요.


낚시줄은 

원줄은 PE 1-2호나

나일론 3~4호를 사용하면 좋답니다.


PE 라인을 원줄로 사용 할때는

도래를 이용해 목줄로 나일론이나

플로로카본 2~3호를 연결하구요.


원줄로 나일론 라인을 사용한다면

목줄을 따로 사용하지 않아도

된다고 합니다. 


쭈꾸미낚시용 바늘은 

흰색의 사기로 만든 구슬에 

납과 갈고리가 부착되어 있습니다.

이 바늘을 목줄에 

연결하기만 하면 되구요.


쭈꾸미는 흰색을 선호하는

습성이 있으니 구슬바늘이 아니라도

갈고리 바늘에 흰색 종류를

어떤 것이라도 부착해서

낚시를 하는 것이 효과적이랍니다.


낚시를 할때는

캐스팅을 하여 바늘을 가라않힌 다음,


낚시줄을 팽팽하게 한뒤

바닥을 더듬어 가는 것을 

반복하며 낚시를 하면 된다네요. 


바닥을 끌다가 한번씩 멈추며

입질을 기다리고

낚시대를 가볍게 흔들어 주어

바닥의 바늘이 올바르게 놓여지도록

움직여 주는 것이 좋다구 하구요.


쭈꾸미의 입질은

낚시대가 가볍게 휘어지기도 하고

꿈틀대는 느낌이 전해지기도 한답니다.


낚시줄을 당겼을때

낚시대가 펴지지 않고 은근히

휘어진 모습이라면 

쭈꾸미가 바늘을 붙들고 있는

순간일 수 있으니


낚시줄의 장력을 유지하면서

빠르게 감아올리면 된답니다.


쭈꾸미는 수심 1-15m 정도의

거친 조류가 흐르지 않는

장애물이 비교적 적은

모래뻘에서 서식을 하고


암반이나 진흙 뻘에는 

거의 서식하지 않고,

조개류가 풍부한 장소가 

좋은 포인트라고 하니


바닥을 잘 살펴보고

낚시장소를 선정하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쭈꾸미는

맑은날씨에 바다가 잔잔하고

물이 맑은 장소에서 잘 낚이며


한낮에는 소라껍데기나 

돌 틈에 들어가 숨어있는 습성이 있지만

자신의 근처에 들어온 먹이는

과감하게 공격한다고 하니까

바늘을 가만히 내려두는 것보다는

자주 이동을 시켜주는 것이 

좋은 성과를 거두는 방법이라네요.


가끔 고둥껍질이나 큰 조개가

매달려 올라오는 경우가 있는데


이럴 경우 대부분

그 안에 주꾸미가 들어있다고 하니

꼭, 확인해보시구요.


무엇보다 바늘이 갈고리 모양으로

둘려져 있으니 손이나 옷에 걸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이미 서해나 남해에서는

쭈꾸미를 대상으로 하는

가족낚시가 성행이라고 하죠.


가족낚시 차 서해안여행 계획을

세우는 분들도 많으실 겁니다. 


가족들과 함께 한나절이면

한 가득한 성과를 볼 수 있어

싱싱한 쭈꾸미를 즐기는 

주말나들이가 되겠죠.


물론, 

집으로 가져가 냉동쭈꾸미를

즐기실 수도 있구요.


쫄깃쫄깃한 쭈꾸미 맛을 위해

가족과 한번 준비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평창동계올림픽이 한창인데요,

설연휴 기간 재미있게 보았던 

종목중에 하나가 바로 컬링입니다. 


그런데 

조금 생소한 종목이다보니

규칙이나 점수계산이 

쉽지 않아서 이해하기

어려운 장면들이 많았어요.


그래서 오늘은

간략한 규칙과 점수계산 법에 

대해서 알아보고


남아있는 경기를 좀더

재미있게 볼 수 있도록 해볼까 합니다.





컬링 종목 구분


동계올림픽의 컬링 경기에는

남자단체전, 여자단체전과

남녀혼성(믹스더블) 등

총 3개의 금메달이 걸려있습니다.


컬링점수계산


각 엔드의 스톤을 모두 던진 뒤

표적(하우스) 중앙에 

가장 가까운 스톤의 주인이

그 엔드의 승자가 되고,

점수를 획득합니다.


진팀에게는 해당 엔드에 

점수가 없는 것이죠.


그러니까,

빨간 원에 가장 가까운 

스톤이 있어야 승리하고,

점수를 얻을 수 있으며


상대팀의 1번 스톤보다

중심에 가까운 스톤의 갯수가

점수로 인정되는 것이네요.


정리해보면 간단한데,


경기를 하는 선수들은

마지막 스톤을 던지기 전까지


매우 많은 경우의 수를 생각하고

대화를 나누며 작전을 세우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컬링을

빙판위의 체스라고도 하죠.


무조건 원중심에

우리 스톤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2-3수를 내다보며


스톤의 위치와

상대방의 진입경로를 

사전에 막는 것이


조금 알고나면 

더 흥미로운 경기가 

되는 것 같습니다. 



19일 오늘 오전 경기 결과,

여자대표팀이


무패행진 중이던,

스웨덴팀을 이기고

공동 1위로 올라섰습니다. 


이제,

20일에 미국과

21일에 러시아팀과 

예선 경기가 남아있는데


예선경기결과에 상관없이

준결승 진출을 확정 지었죠.


부디 지금의 컨디션 유지 

잘 하셔서 준결승은 물론


결승에서도 

금빛 소식을 전해주시기를

응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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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우리나라의 '한글'을

창제하신 세종대왕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조선왕조 제4대 왕인

세종대왕은,


1397년 4월 10일 출생,

1450년 2월 17일(음력) 

승하하셨으며,


재위기간은

1418년 8월 ~ 1450년 2월입니다.


본명은 이도(李祹)이며

자는 원정(元正)이고, 

시호는 장헌(憲)입니다.


아버지 태종과 어머니는 원경왕후의

셋째 아들이며,

비는 청천부원군 심온의 딸

소헌왕후 입니다. 


1408년(태종8년) 충녕군에 봉해졌고,

1413년(태종13년)에 대군이 되었고,

1418년(태종 19년)에 왕세자에 책봉,

같은 해 8월,

태종으로부터 왕위를 양위 받아

 22세의 나이로 즉위 하였습니다.


세종은 6명의 부인과

18남 4녀의 자녀가 있었습니다.


-----

소헌왕후 심씨에게서

5대 왕인 문종,

수양대군(세조 제7대),

안평대군, 임영대군, 광평대군,

금성대군, 평원대군, 영응대군,

정소공주, 정의공주


영빈 강씨에게서

화의군


신빈 김씨에게서

계양군, 의창군, 밀성군,

익현군, 영해군, 담앙군


혜빈 양씨에게서

한남군, 수춘군, 영풍군


숙원 이씨에게서

정안옹주


상침 송씨에게서

정현옹주


-----


가계도가 어마어마하네요.

세종대왕의 일화 중에는

아내 소헌왕후가 임신을 하자

경복궁에 '건순각'이라는 

분만실을 선물하기도 했다죠.


'건순각'은 

건강하게 순산하길 바란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 제도정비 ·유교정치 


세종은

정치적으로 중앙집권 체제 운영을 위해

1420년 집현전을 설치하고


황희, 맹사서으 허조 등을 등용,

왕권과 신권의 조화를 꾀하였습니다.


그리고

6조 직계제를 유지하며

국정을 직접관장하다,

 

1436년 의정부서사제를 실시해

의정부의 의결 기능을 부활 시키고

의정부와 6조의 관계를 정비하였습니다.


또한 집현전을 확장하여

젊은 학자들을 등용,

인재양성과 학문진흥에 힘쓰셨습니다.


이들을 통해

정치 자문, 왕실 교육, 서적 편찬 등

이상적 유교정치를 구현하셨구요. 


 

 ▣ 한글창제 


세종은

1443년 집현전의 젊은 학자들의 

협력을 받아 훈민정음을 창제하고,


3년간의 검증 기간을 거쳐

1446년에 반포하였습니다.


이를 통해 백성들도 

어려운 한자를 몰라도

쉽게 이해하고 

뜻을 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입의 구조와 발성 원리를 연구,

자금과 모음을 서로 교합하여

모든 소리를 적을 수 있는

새로운 표기법을 창제하신거죠.


덕분에

우리는가 지금도 전세계가 

인정하는 과학적인 문자를

보유하게 된 것입니다.




 ▣ 음악과 과학기술의 발달 


세종은

음악에도 관심을 두어


1425년 관습도감을 설치하고

박연으로 하여금 아악을 정리

하는 등 장려하였습니다.


세종은 

현재 무형문화재 1호인

 [정대업, 보태평]을

직접 작곡하기도 하였죠.


또한 천문 역법 기상에도

큰 관심을 가져


외국보다 200년이나 앞서

측우기를 제작하고,


궁중 내에 과학관인

흠경각을 설치 과학기구를 비치하였으며,


천체 관측기구 

해시계(양부일구), 물시계(자격루)

등을 발명 제작하게 하였습니다.



 ▣ 세종의 대외정책 


세종은

주변국과 평화로운 관계를 유지하며

영토확장에 진력하였습니다.


명나라에 보내던 

금,은의 조공물을 폐지하고

말과 베로 대신하도록 하였습니다.


여진과의 관계는

무력으로 강경책을 쓰거나

회유하는 화전 양면책을 썼는데,


두만강 유역의 여진은 

김종서로 하여금 구축하고

6진을 개척하여 국토를 

확장하였습니다. 


압록강 유역의 여진은

최윤덕, 이천 등으로 

하여금 구축하고

4군을 설치하였습니다. 


이때 국경선이 압록강으로부터

두만강까지 확보되어


이곳에 백성들을 옮겨 살게하는

사민정책을 실시하여

국토의 균형된 발전에 힘을 썼습니다.



 ▣ 세종에 대한 평가 


세종은

정치, 경제, 국방, 문화 등

여러가지 부문에서

우수한 치적을 쌓아


수준 높은 민족문화의 창달과

조선 왕조의 기틀을 다졌습니다.


건국 초기의

강압적 왕권과 훈신세력 등이 사라지고,

온유한 유가적 자질의 신권과

유자적 소양을 지닌 국왕의 만남으로

유교정치를 펼쳤습니다. 


그 밖에

단군사당 봉사,

삼국의 시조묘에 제사 등


민족의 역사와 그 뿌리를

소중히 하는 데까지 

관심을 두었습니다. 


당시 사대주의가 팽배한

시대배경을 갖고 있었으나,


외국 문화를 참조하면서도

민족문화를 독자적으로 

발전시키는데 전력하여


민족 역사상 

가장 찬란한 한 시대를 열었습니다.



 ▣ 세종에 대한 일화 


(1)

태종실록에 따르면

'이도(세종)는 성질이 고약해

형제들 사이에서 무시를 당했다'고

기록 되어 있다고 합니다. 


세종대왕은 어린 시절

당시 세자인 양녕대군의 자리를 

위협한다는 의심을 받으며

언제 죽을지 모르는 입장이었습니다.


이로 인해 역사학자들은

세종이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아

틈만 나면 짜증을 내고

성을 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2)

세종이 열일곱 살이 되던 해

태종은 세종에게 

여러 악기를 하사하며,

"너는 세자가 아니어서

따로 할 일이 없으니,

편안히 즐기기나 하여라"

하셨다고 합니다. 


이때부터 세종대왕은

거문고와 가야금에 몰입하여

다른 형들을 가르쳐 줄 수준까지

이르렀고,


실록에 따르면

사이가 틀어졌던 세종대왕과 양녕대군이

다시 화합하는 계기가

악기를 서로 가르치고 

배우면서였다고 합니다.


(3)

세종대왕은 연이은 흉년으로

백성들의 삶이 피폐해지자

고통을 함께 하고자 했습니다.


경회루 동쪽에

백성들의 집과 같은 초가집을 지어

2년간 검소한 생활을 했는데,


이를 염려한 신하들이

몰래 초가집 바닥에 짚더미를

넣어두었는데


세종이 이를 알고

매우 크게 꾸짖었다고 합니다.



(4)

세종대왕은


궁에서 일하는 

노비 여성이 임신을 하면


출산 전에는

한 달의 휴가를 부여해

만삭의 몸으로 일하지 않도록

조치를 하였고,


출산 후에는

100일의 출산휴가를 주었습니다. 

 

남자 노비들 또한

아내가 아이를 낳으면

30일간의 휴가를 주어

아이를 돌보도록 하였구요.


요즘 세상에서도

잘 시행되지 못하고 있는

출산휴가 제도를 

실천하신 거네요.



올해는

세종대왕의 한글창제

575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우리말의 소중함을 되새겨 보며,

감사한 마음을 가져봄이 어떨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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