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李舜臣 (1545 ~ 1598)
이순신 장군의 출생
이순신 장군의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여해(汝諧),
시호는 충무(忠武) 입니다.
1545년 4월 28일
한성부 건청동(지금의 서울 인현동)에서
이정과 초계변씨와의
세번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이순신 장군의 2번의 결혼으로
5남 3녀의 자식을 두었습니다.
이순신 장군의 연보
1545 인종원년
서울 건천동 출생
1576 선조 9년(32세)
무과, 병과 합격,
함경도 동구 비보권관(종9품)
1579 선조 12년(35세)
훈련원 봉사(종8품)
1580 선조 13년(36세)
발포수군만호
1583 선조 16년(39세)
10월 - 건원보 권관
11월 - 훈련원 참군
1586 선조 19년(42세)
사복시 주부(종6품)
1589 선조 22년(45세)
정읍 현감
1592 선조 25년(48세)
3월 - 거북선 진수
4월 - 임진왜란 발발
5월 - 옥포, 합포, 적진포 해전에서
왜선 54척 격파
6월 - 사천 당포, 당항포, 율포해전에서
왜선 90척 격파
7월 - 견내랑, 안골포 해전에서
왜선 60척 격파
9월 - 부산포 해전에서
왜선 135척
1593 선조 26년(49세)
8월 - 삼도 수군통제사
1594 선조 27년(50세)
3월 - 당항포 해전에서
왜선 31척 격파
1597 선조 30년(53세)
3월 - 원균의 모함과 당쟁으로
투옥 후 백의종군
9월 - 명량해전에서 12척으로
왜선 133척과 싸워 31척 격파
1598 선조 31년(54세)
노량해전에서 적선 200척 격파 후
총탄에 맞아 전사
1643 인조 21년
전사 45년 후
"충무"의 시호를 받음
임진왜란 주요해전
옥포해전 (1592. 05. 07)
아군 91척, 적군 50여척
적선 26척 격침, 아군 피해 무
최초의 해전이며,
무저항의 안심속에 기습공격을 진두지휘하여
첫 승리를 거둠.
사천해전 (1592. 05. 29)
아군 26척, 적군 13척
적선 13척 격침, 아군 피해 무
지형과 조수를 이용한
유인작전 실시.
개인적인 공훈보다는
전체적인 성공을 독려
당포해전 (1592. 06. 02)
아군 26척, 적군 21척
적선 21척 격침, 아군 피해 무
적정과 지형 관찰을 통한
정보획득.
경계의 원칙실용
> 탐망선 외양 배치로 기습 대비
> 거북선을 선두로 공격개시
화력 집중의 원칙실용
> 거북선으로 적 기함인 누각대선에
화력 집중 공격
당항포 1차해전 (1592. 06. 05)
아군 51척, 적군 26척
적선 26척 격침, 아군 피해 무
전선 3척으로 포구 내 지형 정찰
전선 4척을 도주 왜선 격멸과
왜군 지원 함선 대비 복병으로 배치
주민보호 및 왜군 육상 도피
방지를 위한 후퇴 및 함대를
좌우 분산 이동 후 협격하여 섬멸
한산해전 (1592. 07. 08)
아군 56척, 적군 73척
적선 47척 격침, 12척 나포
양측 전력 대부분이 투입된 대해전.
지형을 고려하여 판옥선으로 유인,
전술적 후퇴 후
적전에서 대선회하여,
학익진 편성 공격.
적 주력선 공격으로
명령계통 혼란 초래.
안골포해전 (1592. 07. 10)
아군 91척, 적군 42척
적선 42척 격침, 아군 피해 무
모든 화력을 왜군 기함인
총각선에 집중.
지리적으로 불리한 여건이었으나
작전 지휘의 승리.
부산포해전 (1592. 09. 01)
아군 166척, 적군 470척
적선 128척 격침, 아군 피해 무
왜선 집결지인 부산포 공격을 위해
고된 훈련 후 야간 이동을 실시.
장사진(종렬진)을 편성하여
전선 격파를 위한 치열한 장기 포화전.
칠천량해전 (1596. 07. ~ 10.)
아군 삼도수군 268척
조선 수군 거의 궤멸
7년의 임진왜란 중
조선 수군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참패를 당한 해전.
원균의 음주 태만으로
배설의 안전구역 이동 건의를 무시.
이억기 등 지휘관 및 대부분의 군사 전사.
전선 12척만 탈출. 원균 사망
명량해전 (1597. 09. ~ 10.)
아군 12척, 적군 330여척
적선 31척 격침
일자진(횡열진) 편성 공격.
주변 해역의 지형 및
시간대별 조류 변동을 고려하여
출전 시간을 조정.
죽음을 불사한 임전무퇴의
정신으로 정유재란의 전환점 마련.
노량해전 (1598. 11. 18 ~ 19)
아군 83척(명나라 63척 포함), 적군 200여척
적선 200여척 격침, 이순신 장군 전사
전 함대를 좌우로 나누고
주위 섬에 복병 배치 후
야간 기습공격.
퇴로가 차단된 왜선들의
최후 발악으로 근접전의 일대 혼전.
이순신 장군의 주요작품
난중일기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 7년동안 전쟁터에서
직접 작성 한 것으로,
충무공의 성품이나
국정에 대한 솔직한 심정,
군사에 대한 비밀계책,
친지/부하 등과 내왕한 내용,
부하들에 대한 상벌 등이
상세히 묘사되어 있어
임진왜란 당시
정치, 군사에 대한 파악과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활용
되고 있습니다.
이순신 장군의 명언
물령망동 정중여산
(勿令妄動 靜重如山)
가벼이 움직이지 말라,
침착하게 태산같이 무거이 행동하라.
1592년 5월 7일
임진왜란 중 처음으로 출전한
옥포해전을 앞두고,
경상좌우도 수군과 육군의
패배 소식으로 긴장하고 당황한
군사들에게
공격에 대한 세부사항을 지시 후
공포심과 전쟁겸험 부족을
극복하고 전장에서의 여유와
냉철함을 가질 수 있도록
하신 말씀입니다.
필사즉생 필생즉사
(必死則生 必生則生)
싸움에 있어
죽고자 하면 반드시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다.
왜선 133척을 전선 12척으로
싸워야 하는 명량해전을 앞두고,
절대 열세를
정신력으로 극복하기 위해,
장수들의 전투의지 분발과
결사구국의 각오를
나타낸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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